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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봐도 저길봐도

이름
조미숙
시공날짜
조미숙
담당자
조미숙
제목
여길봐도 저길봐도

여길 봐도 좋고 저길 봐도 좋다

3년째 집을 알아봤다. 양가에 비빌언덕 없는 월급쟁이가 단지에서 평수 하나 늘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시도해 본 사람은 안다. 쥐고 있는 돈이 없으니 급매가 나와도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벼르고 벼르던 일을 3년만에 이뤘으니 그 집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귀하랴.

꿈에 부풀어 인테리어 계획을 세웠다. 견적을 좀 받아 보라는 주위의 권유대로 목동소재의 '대표 인테리어'라고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약속한 날 남편과 함께 회사를 방문하니 한국에 베에토벤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다 싶으신 분이 보기 좋은 넓은 방에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우리는 한 두어시간 그분의 인생을 보았다.

살아오신 과거를 말씀하신 건 아니었는데 그분의 가치관과 열정과 자존심과 실력을 우리 부부에게 펼쳐놓으셨다.  

난 그의 감각이 절실해졌다. 그 미팅이,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 우리의 견적여정을 끝내버렸다.

  그는 신기한 이론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외모처럼 그는 실력도 베에토벤 급이었다.

홈 스테이저.

본인을 비디의 대표가 아닌 이름도 낯선 '홈 스테이저'라고 소개했다.

홈 스테이징'...그게 뭐지? 가구나 악세서리의 재배치로 인테리어 시공의 효과를 가지며 공간의 효율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앗! 이거다. 무릎을 쳤다.

예전 집에서 벽지를 바꾸는 시공을 했음에도 내 가구를 그대로 배치했을때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돈은 썼는데 다시 꽝이었던 악몽이 홈 스테이저 사장님의 감각을 고민없이 선택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분이라면 오래된 내 붙박이장을 그리고 주위에서 다 버리라는 외국에서 산 밋밋한 장식장을 멋지게 매치시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견적...

'쨍하게 연출을 해주면서 인테리어비용이 상대적으로 쎄다더라…'라는 말들이 내 결정에 살짝 혼선을 주었다.

비디는 고객인 내가 다른 인테리어업체와 비교하는 것보다 내 규모를 보이면서 진솔하게 대화하기를 원했다.

나는 내 예산을 솔직하게 말하고 이래도 되겠냐고 했을 때 아무말없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비싸다더라...의 소문과 달리 내 예산을 존중하며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값비싼 재료가 무리가 되면 그것과 효과는 비슷한 저렴한 뭔가를 제시해주면서 견적단가를 낮춰나갔다.

사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우리의 예산이 작다고 무시를 하면 어쩌나 돈 내고 눈치보며 일하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내 안에 카드를 준비했다. 결혼 20년 부끄럽지 않고 남에게 폐 안끼치고 검소하게 살면서 옮기는 집...우리에게는 너무 귀한 집이고 그래서 이 일은 너무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말해줘야지..

나의 카드. 그런데 한번도 이 카드를 꺼내지 못했다.

아니 잊어버렸다. 난 충분히 존중받았고 우리집은 그 전문가들이 서로 고민해줬다. 

통쾌한 미팅의 진수

인테리어 타임스케줄이 나오고 사전미팅이 시작됐다. 고민해서 나온 인테리어 디자인을 가지고 첫미팅을 해서 우리를 환상으로 빠뜨렸고 전달받은 우리아이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픽스된 디자인을 기초로 창문부터 해서 전기미팅, 조명미팅, 벽지 및 바닥 미팅에 이르기까지 대학때 못해본 미팅을 실컷 해봤다. 질문을 하면 20년 정도 산 거 같은 디자이너 입에서 50년쯤 이 바닥에서 일한 노하우를 쏟아낸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권하는 것이 다 옳았다. 내 알량한 감각은 널뛰듯했고 내가 선택한 걸 잊거나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우기기 일쑤고  번복하고 싶을 정도로 난 순간의 선택에 늘 갈등하고 번뇌했다.

이런 나를 짜증한번 없이 수정으로 혹은 설득으로 전문가답게 유도해 나갔다.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고르러 다니거나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살이 빠진다고 들었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진행되 사전의 몇 번의 미팅으로 난 벽지와 타일까지 다 골라놓아서 이번 기회에 살좀 빼보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낮에 선택한 것에 대해 밤에 근심어린 어투로 카톡보내면 '사모님, 해결했습니다.'의 답변이 어김없이 온다.

그 문자를 보면 10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했다.

미팅을 하고 나오면서 엘리베이터안에서 난 젊었을 때 한참 일할 때 왜 이런 미팅을 못했었나… 후회가 되는 듯 했다. 디자인이 픽스되는 순간부터 톱니바퀴가 천천히 혹은 빠르게 돌면서 나를 편안하고 즐거운 미팅의 자리로 안내했다. 미팅의 진수를 경험했다. 참 통쾌했다.

세계에서 제일 일 잘하는 여자, 전예진  

20년 산 거 같은 그 여자 디자이너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살았고 내가 보기엔 세계에서 일을 제일 잘했다.

 홍씨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도 내가 필요할 때는 항상 내 앞에 서 있었고 시간을 기가막히게 잘 지켰다. 

질문에는 십장같은 노하우가 그의 속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는데 살다보니 그녀의 말이 다 맞다.  내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면 노칠새라 끝까지 살피며 물어서 내속에 앙금없이 일을 진행하는 신기까지 가졌다.

내 찜찜함을 그의 논리로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민해보다가 정말 내 말이 맞다면서   디테일을 고쳐나가는 세심함도 갖췄다. 이 벽지의 효과와 저 타일의 효능 등등 한 오만가지의 경우의 수를 그녀는 다 경험해 본 듯 했다. 일하면서 그녀를 참 좋아하게 되었다.  

현장의 일하시는 분들과의 우정은 어찌나 깊은지 50살은 차이나는 듯 해도 그들사이에는 의리가 있고 신뢰가 넘쳐보였다. 우리의 즐거운 미팅의 결과대로 현장에서는 정말 착착 소음없이 예정된 일들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집이 신기해서 사진에 담을 정도였다.

성실하고 일에 자부심을 가진 전문가 집단을 난 우리집을 통해서 만났다. 그 중심에 디자이너 전예진이 있다. 어느거 하나 놓치는 거 없이 실수없이 천천히 거침없이 일해나갔다.  일 말미에는 그의 능력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덜 발휘되면 어쩌나하는 인생선배의 마음이 품어졌다. 흠이 있다면...늘 전혀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성형이라는 의학의 도움을 모르는 북한배우처럼 아름다우며 70이 넘는 키에 높은 구두까지 신어서 나보다는 세로로 세운 벽돌 한장이 더 있는 그가 야속했다는 거.  

화룡점정, 홈 스테이징 공사가 끝나고 입주하고 가구를 대충 놓고 짐을 채웠다. 짐이 없을 때 입이 떡 벌어졌던 우리집은 내 헌짐으로 채우자 예상한대로 아까워졌다, 인테리어 비용 들인게. 그러나 난 믿는 구석이 있지 않은가. 스테이징 날짜가 잡혔다.

그들이 왔다. 말없이 매의 눈으로 왔다갔다 고민하는 스테이저 인테리어비디 대표님. 내가 비디를 선택한 정수의 작업이 그 날 있었다. 그의 눈과 손끝에서 우리집의 인테리어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벽에 거는 소품하나까지 일일이 내  이야기를 들으며 달아주셨다.

피아노를 옮기고 가구를 옮기면서 수평을 맞추는 도중 바닥에 누워서 수평작업을 하시는 사장님을 보았다.  내려다 보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이 분…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상담만 하셔도 충분한 분이 젊은 고객의 집 가구 수평을 맞추기위해 바닥에 누우셨다. 아. ..

이게 바로 전문가구나. 다른 업체와의 비교를 거부하셨던 그 자존심은 책상에서 큰소리치며 부리는 교만이 아니라 바닥에 눕는 겸손에서 오는 거구나. 참 짠했다. 피아노가 꼭 거실에 있어야 하고 두 개의 멋없는 장식장도 마찬가지고 아일랜드를 설치했지만 얼마 사용하지 않은 돌식탁을 난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참 멋지게 스테이징이 되었다.

지우려고 했던 자식이 얼마나 곱게 자라는지 지우면 어쩔뻔했니…^^

나의 안도가 다시 비디의 신뢰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난 구닥다리짐을 가지고도 백만불짜리 거실을 갖게 되었다.    여길 봐도 좋고 저길 봐도 좋다 우리 가족들이 요즘 하는 말이다. 목동에 사는 사람들의 한은 수납공간에 있다. 나 또한 그 한을 가졌기에 전예진팀장이 그 한풀이를 해줬다. 심지어 비어있는 수납공간이 있다. 뭘로 채우나...의 즐거운 고민을 요즘 한다. 서서 빨래를 비비면서 창 밖의 풍경을 보며 감사기도를, 잠든 아이들 얼굴을 확인하러 간 아이들의 방에서 기쁨을, 안방안에 만들어진 나만의 서재안에서 이 글을 쓰면서도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참 좋다. AS라..... 사실 AS가 될만한 건이 별로 없다. 10여가지의 걱정을 기록해 놓았는데 전혀 문제없다는 시원한 답변이 돌아온다. 다 알고 진행한 작업이었단다. 그러니 남는 AS건이라고는 붙박이장에 그릇을 놓았는데 간격이 넓어서위쪽 공간들이 아깝다...하니 우리 맘 좋은 반장님 바로 판 짜 오셔서 후딱 달아주고 가신다. 이사하면서 찍힌 페인트들이 약간 있는데 이는 내 실수이기도 한데 도장AS 스케줄을 잡아주셨다. 오히려 가구배치 더 고민해서 다시 오겠다는 전화를 준다. 난 이만해도 훌륭한데...자꾸 오겠단다. 

짐 들어오기전 마지막 소소한 점검차 공구들고 오신 분은 다름아닌 사장님이었다. 홈 스테이징의 놀라운 일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작고 소소한 일로 본인이 직접 오시는 걸 보고 놀랐다.  그리고 짐 보다 먼저 와 있던 귤 한 박스.  친정아버지가 고생했다고 보내주신것만 같아서 마음이 짠했다. 한달의 작업을 거치면서 가족애를 갖게 해 주신 사장님과 비디 직원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고민해서 예쁘게 만들어 주신 집에서 예쁘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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